5-24. 2015
어머니는 여전하셨다.
84세이신 어머닌 요리 하시는일은 다른사람에게 틈을 안 주셨다.
나는 어머니곁에 서서 그릇이나 냄비나 나오는대로 설거지를 해 드렸다.
어머니는 음식을 하실때면 순서가 있어서 그 순서대로
볶기도 하시고, 굽기도 하셨다.
하다못해 갈치에 밀가루를 입혀서 굽는일도
도와드리고 싶었지만 내가 할수가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후라이팬 온도도 , 5분이상 기다렸다가
높은 온도에서 구우셨다.
내생각에 충분히 후라이팬이 달구어졌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어머니께서는 아직 더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음식 만드는 일이 어머니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인것 같아,
어머니 하시는대로 그렇게 기다리고 서 있었다.
" 너는 그릇이나 씻어라" 고 하셔서 그릇을 씻는동안
어머니께서 갈치를 노릇하게 구어내셨다.
모든 음식이 맛이 있었다.
나는 곁에 서서 그냥 보고 있는데 멸치 액젖과 고추가루만 넣고
부추 겉절이를 하셨는데 그것도 정말 맛이 있었다.
많이 하시지도 않고 한번 먹을 만큼만 묻혀 내셨다.
5 - 25 2015
어머니 방에는 가족들 사진이 많이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 사진은 물론이고 , 손주들 사진과
이미 성인이된 우리아이들이 어렸을때 사진 ....
동생들의 아이들 사진도 ....
나는 한참을 그렇게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내 바로밑 여동생 대학졸업식날 온가족이 사진을 찍었는데
내가 보이지 않았다.
이유를 모르겠다. 기억이 안난다.
그때만해도 어머니는 고우셨다.
내 바로밑 여동생의 키가 161cm 인데 항상 키 때문에 작다고 속상해 했었다.
가족 사진을 보니 남동생들은 키가 180이 넘으니 그때로서는 큰 키들 이었지만
가운데 여동생이 작아 보이기는 하다. ( 요즘엔 더큰 청년들이 참 많다.)
그렇게 예쁘던 동생이 지금 60이 되었다.
그래도 이번에 친정에 가서보니 몸관리도 잘해서 10년은 젊어보였다.
5 - 27 수요일 2015
지난주 금요일아침에 친정에 갔다가 일요일 저녁에 돌아왔다.
월요일까지 지내려고 했었는데 빨리 오는것이
화요일 막내 등교 시키는데도 좋을것 같아서 ....
사실은 더운 날씨에 사온 배추로 어서 김치를 담아야 할것도 같아서
일찍 돌아왔다.
어머니는 섭섭해 하시는것 같았다.
공휴일인 월요일에 바베큐를 해서 먹고 가라는것을
일찍 가야한다고 하고 왔기 때문이다.
월요일에 저린 배추 한박스로 막김치를 담고,
배추 줄거리 하얀것과 무우, 사과, 배를 네모나게 썰어
미나리도 넣고 해서 물김치도 담았다.
어머니께서 큰봉투로 가득주신 부추로는 부추김치를 담고
이미있던 페르시안-큐컴버로 오이 소배기도 해서
4 가지 김치가 만들어 졌다.
그동안 뉴져지 집근처에서 사온 배추로 김치를 담았는데
삶은 김치처럼 되었던것이 , 내가 잘못해서인지 배추가
나빠서인지 모르지만, 친정에 갔던 김에 배추한박스를 사와서
김치를 담느라 운동도 안가고 어제는 하루가 바쁘게 지나갔다 .
오늘은 운동이 끝나고 그동안 잘되던 카톡이 안되어서
' T - MOBILE STORE ' 에 가서 고쳐 가지고왔다.
거기서 일하던 두청년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kOREA 라고 말하자 ' 본.촌 치킨.. 김치.. 소주' 를 좋아한다고 해서
좀 놀랐다.
손자 백일때 친정에 갔다가 맛본 한국식 튀김닭을
이 벽안의 백인청년들이 알고 있었다.
하얀 무우깍뚜기가 나오고 , 튀김껍질이 두껍고 단단한 그 튀김닭이
그렇게나 유명하다니 ....
카톡은 다시하게 되었고, 가게를 나오는데 참 기분이 흐뭇했다.
내가 처음 미국에 왔었을때 동네 백인할머니가 내입에서
마늘냄새가 난다고 얼굴을 찡그리던 70년대 와는 너무다르게
마늘냄새 나는 김치를 먹어 본것을 자랑하는 사람을 종종 볼수 있다니 ...
우리나라가 좋은것으로 세계에 알려져 있다는 생각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