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랫만에 친정에 가게 되었다.
주름진 얼굴로 아이처럼 웃으시며
반가와 안아주시던 어머니 얼굴이 선하다.
딸아이가 LA에서 친정근처로 이사를 하게되니
딸 집과는 15 분 거리에 사시는데,
그전보다 자주 찾아뵐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딸집에서 바라본 알렉산드리아
같은 동부이지만 뉴져지에서는 아직 이른 아카시아꽃이
친정 동네에서는 이미 피어나고 있었다.
아름다운 5 월 !
가는곳마다 꽃과 초록 나무잎이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시다.
친정집에도 또 각종 꽃들이 피어
마음속을 환하게 해 주었다.
82 세의 어머니는 그 연세에도 각종 요리를 잘 하시니까
내가 할수있는 일은 접시에 그 요리를 담고
상에 나르는 일과 설겆이를 하는일 뿐이다.
' 효도' 라는것이 내가 어머니께 무엇을
해 드리는것도 좋지만 어머니가 하시고 싶어 하시는 일을
하실수 있도록 하는것도 좋은 일이 아닐까 ?
음식만큼은 어머니 본인이 하시는것을 좋아 하신다.
어렸을땐 철이 없어서
" 누구집에 갔더니 무슨음식이 맛이있었다."고 말씀드리면
" 그 집에 가서 살아라." 고 하시는데
좀 화가 나신듯한 목소리셨다.
내 바로밑의 여동생은
" 엄마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이 있어요 " 라면서
절대로 다른집에서는 음식을 안먹고 들어오는데
어머니께선 아주 좋아하셨다.
내 입맛이 쉬워서 그랬는지 세상에는 같은 음식인데도
집집마다 색다르게 다 맛이 있어서 ....
그저 정직하게 말씀을 드렸을 뿐인데 ....
어렸을때 나는 입이 매우 가벼워서 밖에서 있었던 일을
잘 담아두지를 못하고, 집에오면 낱낱이
어머니께 다 얘기를 하곤 했었다.
지금 나이가 되어서야 해서는 안될 소리는
참을줄도 알게 되었지만 , 진작에 알았었더라면
어머니를 좀더 기쁘게 해 드릴수도 있었을 텐데 ....
30 여년전 일이었다 .
알렉산드리아 친정근처 아버님 친구분 댁에
함석헌 할아버지( 7 반 정인희 외할아버지 )께서 오실 일이 있으셨는데
그분 댁에선 음식을 잘 못하셨던지 친정 우리집으로 모시게 되었다.
그러니까 , 어머니 음식솜씨는 아마도 소문이 나 있었던 것 같았다.
모든 분들이 어머니 음식을 맛있다고 한마디씩 하셨는데
그때 굉장히 기뻐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
초등학교 4학년때 ' 정인희' 와 나는 원효로에 살았었고
같은반이어서 등.하교길에 매일 함께 다녔었다.
그리고 주말에는 인희 외할아버지 댁에도 놀러가곤 했었다.
세월이 흘러 미국에서 인희를 다시 만났을때
" 인희야 . 너는 왜 그렇게 외가에 자주 갔었니 ? " 라고 물으니까
부모님이 직장일로 지방에 사셔서 자기는 어렸을때
서울 외가에서 살았다고 하더라 .
그런데 어머니 얘기를 하다가 인희 얘기를 하게되었네....
인희 전화가 바뀌었는지 소식을 모르고 지낸지 꽤 되었다.
내 약혼식후 공항에서 외조부모님과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손님이 언제 오시더라도
내눈에는 요리할 재료가 없어 보이는데도
각종 맛있는 음식을 쉽게 잘 하신다 .
우리가족 ( 나, 남편, 막내 )과 딸가족 ( 딸 내외, 아기 )이
어머니께서 만드신 팔보채와 양념간장으로 구운 조기와
소고기 버섯볶음과 김치찌게 그리고 산나물이었는데
손주사위까지 보시고 늙으셨는데도 음식맛은 여전 하셨다.
언제까지나 어머니께서 만드시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
웃음가득하신 어머니의 그 곱던 얼굴이
언제 저렇게 주름이 많아 지셨을까 ?
어제 친정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스마트 폰으로 남숙이의 리플을 읽다가 무엇을 잘못눌렀는지
올렸던 글 전체가 없어져서 이제 다시올린다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이제 나도 ! (0) | 2013.08.19 |
---|---|
[스크랩] 한아름에서 쫓겨나다 (0) | 2013.06.18 |
늦게 온 버스 (0) | 2013.03.13 |
[스크랩] 요즘 아기들 (0) | 2013.01.18 |
[스크랩] 수 영 (0) | 2012.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