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반 회원중에 한사람이 도자기 반죽 흙으로 악세사리 만드는 것을
강의하고 가르쳐서 $20을 내고 배우러 갔었다.
기본적인 비트모양을 만들거나 납작하게 해서 틀로 자르는 것을 가르쳤는데,
그날 남은 도자기 찰흙을 집으로 가져와서 혼자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재미있었다.
만든 구슬이나 비트는 이쑤시개로 꽂아서 화씨265도에서 30분 구우라고 했다.
위에 것은 그렇게 만든 브로찌,귀걸이,목걸이와 비트이다.
2월23일.2019년.토요일.
아침에 남편의 피검사하러 의사 사무실로 집에서 아침8시에 떠나서
다녀 온지도 5시간이나 지났다. 지금은 오후 1시39분이다.
아침에 밖에 나갔을때 비가 내렸는데, 지금도 비가 내린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 정신들게 해줄 고음 남자가수 이름이 안떠올라서
유튜브에 여러번 타이핑하면서 찾다가 박종호 성가가수가 나왔다.
맑고 고운 목소리로 찬송을 하는데 너무 듣기 좋다.
어제 산책길에서 조금 남은 눈이 보였다.
거의 28년인가 다니던 필라교회를 떠나, 동네 작은 교회의 사랑의 교실에서
막내를 사랑으로 돌봐줘서 뉴져지 집에서 가까운 교회로 잠시 다녔다.
그때 만난 분이 이한영목사님이셨다. 부부의사 이셨는데, 이분이 누나가 생사를 헤맬때
누나를 살려주시면, 목사님이 되겠다고 서원을 하셔서 목사님이 되셨다고 한다.
작은 교회인데도 불구하고, 장애인 사역을 하셨다.
척추에 암이 생겨서 사경을 헤매시던 누나는 기적적으로 딸을 낳고 살아 나셨다.
이명자집사님은 몇년전에 천국에 가셨고, 그딸(34살?)도 결혼을 했다.
어제, 만든 목걸이를 흰티셔츠에 하고,아트재료상에
들렀다가 월남국수집에 갔었다.
그 당시에 작은 동네 교회였는데도 이한영목사님이 좋으신 분이라서
각분야 마다 좋은 사역자들이 있었다. 그중에 성가대를 맡으셨던 박종호씨는
미국에서 살면서 몰랐던 분이었는데 엄청 노래를 잘해서 놀랐다.
내 둘째가 중학생때 체중이 좀 나갔는데, 그분이 둘째의 이름대신 "야! 뚱땡아!"라고하면
그때마다 둘째가 어색한 한국발음으로 "그러지 마요."라고 하던 일이 생각난다.
사실 그분은 내 둘째하고는 비교도 안되게 엄청 체중이 많이 나가셨다.
어떻게 저리 고운 음성이 그분에게서 나오는지 지금도 감탄하면서 듣고 있다.
이 사진은 페인트로 던져서 그림을 만드는 반이었는데
작은화판과 흰 도시락에 작은양념그릇(6가지색 오일페인트)이 들어 있었는데,
잠깐 들렀던 남편이 점심을 주는줄 알았다고...
그 당시 각분야마다 계셨던 분들이나, 우리가족도 이한영목사님께서
한국에 신학대학교수로 가시면서 다들 다른 곳으로 옮겨 가신 것으로 안다.
우리가족은 이한영목사님이 한국으로 가신후 전에 다니던 필라교회로 돌아 갔었다.
그러다가 은퇴한 후에는 동네 체리힐 감리교회로 옮겼다.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어제 새로 찾아갔던 월남국수집이다.
내가 들으려 했던 가수이름은 Dimashi'디마쉬'였는데, 요즘 영적으로도
피폐한 내게 박종호씨의 성가가 들을수록 영이 맑아지는 느낌으로 듣고 있다.
한참을 박종호씨가 부르는 찬송을 듣다가 Dimash 이름이 생각이 났다.
우리가족은 박종호씨의 이런 모습을 보았었다.
인터넷으로 박종호씨를 검색하다가
요즘 이렇게 다이어트로 홀쭉해지신 모습을 보고 놀랐다.
Dimash 노래를 중국 나가수에서 부르던 것으로 듣고 있었다.
남편은 너무 높은 소리라고 Dimash 노래를 안듣고 싶어한다.
나도 가끔 Dimash 노래만 들었을 뿐이다.
내 생각이지만 우리나라 나가수를 보다가 중국 나가수를 보면 조금 어색하다.
지나간 시대의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는것 같다.
내가 중국인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 찾은 월남국수집에서 주문한 쌀국수를 기다리면서
아리조나에 사시는 블친에게 댓글을 달고 있었다.
중국에 나가수를 우리나라에서 수출했다고 들었다.
그만큼 우리나라 대중음악 수준이 중국보다 나은 때문인것 같다.
우리나라 가수들이 나가수에 출연하여 말하는 것을 보다가
중국 가수들이 나가수에 나온 가수들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도 어색하다.
도시락속에 들어있는 유화 페인트를 팝시클대로 저으라고 했다.
그리고 저 작고 흰화판에 붓고 던져서 그림을 만드는데
재미있기는 하지만 예술을 하는 기분은 안들었다.
런던에서 X Factor 쇼에서 Dimash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
심사위원석에 앉은 여자도 객석에 앉은 여자들도 많이 눈물을 흘린다.
저렇게 노래를 잘할수 있는 목소리는 그 부모에게서 받은것 같다.
그 아버지도 어머니도 굉장히 노래를 잘부른다.
X X X X
도자기 만드는 흙으로 아트반에서 만든 비트와 구슬과 납작한 것인데, 집에 가져 와서
맨위에 보이는 꽃을 만들었다. 오븐에서 구우면 단단하게 되지만 ,
굽기 전에는 손으로 만지면 다시 부드러워진다.
비가 오고 있는데,남편이 심심하다고 운동을 가겠다고...
매일 나가던 운동을 비가 오는날 쉬고있으니 심심하다고...
언제나 나는, 그냥 가자고 하면 안간다고 말하다가,
남편이 혼자 가겠다고 하면 그때야 같이 가겠다고 따라 나간다.
그렇게 오늘도 밖에 비가 오는 날 클럽하우스에 운동을 하러갔다.
그리고 어제 나가서 다음 번에 더 배울때 사용하려고 모양을 찍는 것을 몇봉지 사왔다.
크리스마스튜리에 다는 오나멘트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수영장에서 한국인 80대 부부를 만났다.
그분들에 대해 모를 때는 그분들이 70대 이신줄 알았다.
두분께서 그 넓은 수영장을 대각선으로 서로 걸어 다니신다.
처음에는 수영장 라인에 줄을 쳐달라고 거기 안전요원에게 부탁을 했었다.
두분께서 그렇게 걸어 다니시면 내가 수영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내 친정 어머니보다 조금 젊으신 분들이신데, 열심히 운동을 하시는 것이 좋아 보였다.
내가 만든 것을 아트반에서 가르치던 사람이 잘했다고
거기서 같이 배우는 회원들에게 와서 보라고....
오늘은 수영하고 나와 보니 그 두분이 걷기를 끝내고 수영장에서 나가셨다.
수영을 마치고 샤워룸에서 그 여자분을 만났다. 같은 한국분이시라
또 내 어머니(조금 젊으시다) 또래셔서 나를 대하실때 따뜻하게 대해 주신다.
몇년전 남편분께서 자전거를 타시고 집으로 돌아 오신후
집 차고앞에서 자전거와 같이 넘어지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엉치뼈가 골절되셨다고 .. 그후로 다른 운동은 못하시고
수영장에서 걷기만 하신다고 하셨다.
매일 꾸준히 수영장에서 한시간 정도 걷기운동을 하신다고 하셔서
내가 잘하시는 일이다라고 말씀드렸다.
전에 갔던 월남국수집보다 값이 쌌다($9.99).
남편 입맛에는 이집이 더 맛있다고....
그 부인께서는 집으로 가시고 또 다른 조금 젊은 한국여자를 만났다.
내가 "처음 뵙네요. 한국분이시군요?"라고 인사를 했다.
나보고 "여기서 산지 얼마나 되셨어요?"라고 묻기에,
"작년 5월에 이사를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자기는 3년이 되었다면서 "여기 참 살기 좋은 곳이지요?"라기에 "네.그렇습니다.
그런데 집이 조금 작은듯 해요." 라고 했더니 "방이 몇개여요?"라고 묻기에
" 방이 3개입니다."라고 했더니 " 우리 집은 이층집이예요.
여기 큰집들도 많은데 왜 작은 집을 사셨어요?"
뭐야? 이여자 초면에 말이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남국수집에서 일하는 젊은여자(다 가족같았다)가
어떻게 알고 자기집에 왔느냐고 물었다.오픈한지 얼마 안되어 보였다.
인터냇으로 검색해보고 왔다고 대답했다.평점은 4.3인 곳이다.
내가 말할 때마다 말을 잘못했는지 이 여자분 말이 통통 튕기신다.
아까 어머니 같으신 분과 대화할때와는 너무도 달랐다.
기분좋게 수영하고 나와서 처음 본 여자가 기분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새로 도자기흙을 사왔는데 잘못 사왔다.이것은 오븐에 넣는 것이 아니고
그냥 말리는 것이다.
다들 은퇴하고 집을 줄여서 이사를 왔는데 '네집은 작다. 내집이 크다.'라고 말하다니...
내게 "나이들어서 집이 조금 크면 뭐해요? 치우기만 힘들지요."라고 할줄도 알아야지...
오늘 처음 본 한국여자를 언제 다시 볼줄은 모르겠지만 같은 한국인이라 씁쓸하다.
노래하고 있는 Dimash.
클럽하우스에서 나와서 남편에게 "오늘 기분도 안좋은데 월남국수집 안갈거야?"
했더니"비가 오니까 밖으로 돌아 다니고 싶지않아."그래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 4시30분에 끓여놓은 미역국에 김치로 저녁을 간단하게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난후 Dimash노래를 계속들었다.이젠 그만 들으려고 한다.
지금부터 도자기흙으로 무엇인가 만들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