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과자를 혼자만 잡수시던 내 할아버지

푸른하늘 파란하늘 2016. 5. 17. 04:34



                                    딸기농장에서 손녀딸이 주먹보다 큰 딸기를 따서 보여주고 있다.



                            5월15일.2016년.일요일.

어제는 낮동안 좋았던 날씨가

저녁먹을 무렵에 바람이 불고 비가 왔었는데,

오늘 아침은 바람은 불지만 맑은 날이다.

잠깐 커피를 마시러 아래층에 갔다 오는데,

늦잠 잘테니까 깨우지 말라던

막내가 혼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귀가 밝은 아이다.

모른척 해야 할것 같아서

냉커피만 마시고 빨리 올라왔다.

전기 레인지에 물주전자 올렸다가,

올라 올때 남편 커피를 가지고 왔다.

남편도 엎드려 컴하고,나도 엎드려 컴을 한다.


겨울동안에 실내온도를 손주들 와있는 날만 빼고는

화씨 65도 정도로 지내니까

조금 추운편이라 엎드려서 컴을 했는데,

이제 여름이 오면 아래층으로 컴장소를 옮기려고 한다.

눈뜨면서 컴을 하고 잠자기 전에 컴을 끄고 자는데

남편보다 항상 내가 먼저 잠을 잔다.


어제 절여 놓은 배추를

씻을 때마다 까만 흙이 바닥에 보여서

안보일때 까지 여러번 씻었다.

동생에게 물어 보려다가 블친이 배추김치에는

배와 양파를 갈아 넣으신다고 하셔서

이번에는 그렇게 만들어 보기로 했다.


큰배 3개와 큰양파 2개를 믹서로 갈아서

찹쌀 풀 쑨것에 게 세마리 그려진 소스와 새우젓과

멸치액젓을 부은후 고추가루를  부어서 속을 만들었다.

딤채 김치통으로 두통의 포기김치와

한통의 막김치를 담았다.

배추 한잎도 버릴 것이 없이 다 절여서 담았다.


남편은 아침겸 점심으로 늦게 먹은 죽이

소화가 다 되었는지 배가 고프다고 했다.

남편은 마루 재료를 이층에 나르고 있었다.

김치담는 중간에 냄비에 물을 올려 놓고

자장국수 생면 삶을 물을 올려 놓은후

국수를 삶아서 건져 놓았다.


애호박 잘게 썰어서 웤에서 볶고,

스시소스를 조금 부어서 볶다가,

자장소스를 넣은후 볶다가

썰어 놓은 양파 3개를 넣어서 볶다가

마이크로오븐에서 익힌 감자를 껍질을 벗겨서

깍뚝썰기로 썰어서 자장면 볶는데 넣은후 자장소스가 완성되었다.


속성으로 해서 다른 것을 넣는 일은 생략했다.

고기도,오이도 오늘은 안넣고 했다.

5시 45분경에 저녁이 준비가 다 되었다.

그런대로 맛이 괜찮았다.

오늘 내 할일은 다해서 이층으로 왔는데

김치 담으면서는 몰랐는데 몹씨 피곤하다.


                                                          딸기농장에서 딸기를 먹고 있는 손주들.


                                         


                                          5월16일.2016년.월요일.

내가 할머니가 되고 난후 어릴적 내 할아버지 생각이 자주난다.

나는 아주 어린시절 자주 할아버지댁에 놀러 갔었다.

매달  월급을 타시면 아버지께서는

고급 제과점에 들르셔서 샘비과자와

웨하스와 각종 사탕등을 사가지고 생활비를 드리려고

나를 데리고 전주 할아버지댁에 가셨다.


아버지께서 사오신 고급과자는

내게 맛 보라는 말씀도 안하시고 벽장에 넣어 두셨다.

나는 아버지와 같이 왔다가 할머니께서

나는 두고 가라고 하시면 좋아서 남곤 했었다.

할아버지께서 과자를 약이라시면서 주셨던

생강강정은 눈물이 날만큼 매운 맛이었다.


어느날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정원일 하시느라 바쁘시던날

호기심으로 그 벽장에 올라가 보았다. 

과자는 약이라고 못먹게 하셨지만  

아무 말씀도 없으셨던 꿀단지가 보였다.

그래서 다섯살 나는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고

표시 안나게 꿀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었다.


그렇게 많이 먹을 생각은 없었는데,

자꾸 손가락이 꿀단지에 갔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뚜껑을 닫고 벽장에서 사뿐히 내려와서

시치미를 떼고 아무일도 안한 사람처럼

그렇게 있다가 저녁을 먹고 난 후였다.


할아버지께서는 저녁 식사후엔 벽장문을 여시고

그 약이라는 과자를 혼자서 꺼내어서 잡수시는데,

그 날은 이상한 말씀을 하셨다.

어린아이들이 꿀을 먹으면

꿀이 너무 아이들에겐 독해서

속에서 불이 난다고 하셨다.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초저녁잠 많았던 내가 잠이 오지 않았다.

꿀을 먹고 내몸에서 불이 날까봐 기도하기 시작했다.

손을 가슴에 얹고 ,꿀이 내려간 자리가 불이 날까봐서

뭐라고 기도 했는지 생각은 잘 안나는데

나는 간절히 기도 하다가 잠이 들었다.


기도를 들어 주셔서 그런지

아침에 눈을 떴는데,

내몸에 불이 안나고 그대로 였다.

그 시절로부터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때 그 공포감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어른이 되고

할머니가 되도록 잊지 않고 지금도 생각이 난다.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셨고

교회 장노님 이셨고,

무엇보다 할아버지셨다.

내가 손주가 있어보니 내 할아버지가 이해가 안된다.

어떻게 내 할아버지께서는  그 많은 고급과자를

손녀딸에게 단 한개도 안주시고 혼자만 잡수셨을까?


어린 나이인데도 할아버지께서 약이라고 하셔서

과자를 달라고 떼를 써본 일도 없었지만,

한국나이 다섯살 어린손녀 옆에서

혼자서 조용히 그 많은 과자를

근엄하신 얼굴로 엄숙하게

어떻게 그렇게 잡수시고 계셨을까?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내 아버지께서도 할아버지가 되셨다.

내가 결혼을 하고 큰딸을 낳았을때

얼마나 아버지께서 기뻐 하시고 좋아 하셨는지 모른다.

내 아이들을 예뻐 하셔서 업어주시던 사진이 있다.

미국에서는 아이를 업어주시는 할아버지는 못봤다.


아버지께서는 해마다 할아버지를 뵈려고 한국에 나가셨다.

나가셔서는 손주들 자랑하시느라고

매번 사진들을 가지고 가셨는데,

내 할아버지께서 아버지께 물으셨다고 하신다.

정말 그렇게 손주들이 예쁘냐고 그렇다고 하셨더니

"나는 손주들이 예쁜지 모르고 살았다."고 하셨다고 한다.


할머니께서 따뜻하셔서 할머니집에 가기를 좋아 했지만

할아버지는 언제나 무서운 분이셨다.

요즘에도 내 할아버지처럼 차가운 분들이

손주들을 안 보려고 하시는것 같다.

아버지의 따뜻하신 성품은 할머니로부터 온것같다.

이 세상에 내 할아버지 같으신 분이 또 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