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원 사진대신에 창경원 벚꽃인것처럼.....
5월6일.2016년.금요일.
어젯밤에 일찍 잠이 깊이 들고,
새벽에 5시가 되기전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딸집 부엌에서 소리날까봐
조심해서 냉커피마시고 ,
콘텍드랜즈하고 , 컴앞에 앉았다.
부지런한 새들 소리가 들리고 있다.
미동부는 숲이 많아서 어디에서나 새소리가 들린다
딸집이지만 내 집만 못하다. 조심스럽다.
어제가 한국에서는 어린이날이다.
내가 어렸을때 어린이날에 있었던 일이다
그 당시 창경원에 가는 일은 아주 큰일이었다.
집에서 소년한국일보를 구독해서 보았는데,
1960년 어린이날에,특별히 창경원을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개방한다는 기사가 났다.
나는 그때 약수동 작은 골목에 항상 모이던 아이들속에 있었다.
8살이니까 다른 10살 넘은 남자 아이들속에 있으면
정말 어리고 작았을 것이다.
나는 창경원을 어린이날에 무료로 개방한다는
소리를 하면서 신문을 보여주었다.
내가 한말에 덩치 큰 남자아이들,심지어 틴에이져들까지 솔깃해 했다.
갑자기 내가 무슨 큰힘이라도 가진 작은 꼬마여자인 것처럼
동네아이들이 내게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말하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십여명이 되었다.
나는 부모님과 가끔 창경원에 갔었기 때문에 길을 잘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길로 약수동을 지나서
장충당공원 앞을 지나고,동대문을 지나서 창경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신문에는 그렇게 무료라고 해놓고 입장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어린나이에 어떻게 그렇게 당당 했었는지
품안에서 소년한국일보를 꺼내들고
어린이날에 무료개방 한다고 해서
약수동에서 걸어왔다는 말을 했다.
그러는 사이에 소란한 것을보고 관리인 총책임자로 보이는분이 나타났다.
나는 다시 신문을 꺼내들고 이제까지 일을 다시 했더니,
그 관리인 총책임자이신 분이 "들여보내라!"고 했다.
아마 그 어린 나이에도 인솔자의 책임을 통감했는지
나는 어른들에게도 물러서지 않는 당당함으로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스운 광경이다.
그많은 아이들중에서 작고 어린여자인 내가
인솔자의 입장이었다니 사실 신문은 아무것도 아닌데.
신문이 없던 큰아이들이 내게 순하게 따라 왔던일은
참 내자신이 대견하다.
아마도 어른하고 같이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무료라는것을 신문에서 뜻하는 것이었을것 같다.
그때만해도 개구리소년 같은 사건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아침나절에 사라진 동네 아이들 때문에
저녁이 되도록 나타나지를 않아서 다들 부모님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해가 져가는 어스름한 저녁에 우리는 동네로 돌아왔다.
어떻게 아버지께서는 이모든 일을 주장한 책임이 내게 있다고
생각하시고, 회초리를 준비하시고 기다리셨다.
참 이상하게도 맞아서 아팠던 기억은 안나고 ,
내가 그많은 동네아이들을 이끌고 갔다오는동안
대장급 대우를 받았던 기억만 난다.정말 나는 대단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