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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박씨 아주머니

푸른하늘 파란하늘 2016. 2. 4. 00:08

 

 

 

 

                  어제 아침에 집을 나설땐 이렇게 환한 아침이었다.

 

                      2월3일 .2016년.수요일 아침

 

어제 타운쉽 사무실에 세금을 내고 오는 길에 또 월남

국수를 먹었다.남편이 왠일인지 월남국수집에 가준다.

주문 하면서 지난 번 국수양이 다른 때 보다 적더라고

말을 하니까,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웨이터가 말해서

'국수만 더 시키고 싶다' 얼마 더 차지하느냐고 물으니

$1.75라고 해서 추가로 국수 사리만 더 시켰다.남편도

양이 적어 졌다고 해서 사리를 같이 나누어서 먹었다.

 

 

           점심때 월남국수집에는 미국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어제 점심을 먹고 들어온후 남편은 저녁이 될때 까지,

둘째딸 짐을 다른 데로 옮기기 시작했다.이층을 둘째가

쓰던 방을 페인트칠을 하기 위해서이다.가끔 친구들의

전화를 받게 된다.얘기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친구다.

누구라도 자기 얘기 들어주면 속이 시원 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1시간 20분을 들었다.남편을 도와야 하는데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짐을 어떻게 나를수 있을까?

 

 

 

가끔 우리집에 찾아 오시던 분이 계셨다.

몇년전 70대 중반의 아주머니는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하시다가 2시간쯤 있다 가셨는데,안오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내가 들으면 너무 불편했다.

내게 오실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상담이 필요하신 분이셨다.

외모도 출중하시고,피부색도 흰편이시다.

경상도분이셨다.부산이 고향이라고 하셨다.

 

 

 

                                   꽃이름은 모르지만 예쁜꽃.

 

남편은 육사를 나오시고,참 행복하신 부부이신줄 알았다.

나보다 열살은 많으신 분이 찾아 오셔서 남편이

동성애자라는 말을 시작하면 나는 어쩔줄 모르고,

맞장구도 쳐드릴 수도 없고,다른 곳으로 달아날 수도 없었다.

그날은 수요일이라서 수요예배에 가야하는 시간이라고

말씀드려서 그분은 다 말씀을 못하시고 아쉬움을

지니신채 그냥 돌아 가셨었다.

 

 

 

                            집을 치우면서 버리려고 내놓은 책들

 

그 무렵 미국에 사는 여학교 친구가,친정어머니를 만나러 

캐나다에 갔다가,캐나다에 사는 다른 여학교 친구를 만나서

내가 미국에 산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그날로 보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친구가 그렇게 좋아서 어쩔줄 모르고 흥분해서

전화를 한뒤 어느날, 황당하게도 "토론토에서 운전해서,

지금 네집에 거의 다왔으니까 집주소가 어디냐?"묻는

전화를 받고 너무 놀라기도 했지만 반갑기도 했다.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어린아이같은 어른들이 있다.

사진이 별로 없어서 내가 그린 그림중에서 몇장 대신 올렸다.

 

정신을 잘 차려야 겠기에, 밖에 있다가 집으로 와보니,

신기하게도 손님 맞을 준비가 완벽한 우리집이었다.

가끔 나는 무슨 영발인지 갑자기 대청소를 하고, 먹을것도

가득 준비해 두었을때 뜻밖에 방문객을 맞을 때가 몇번 있었다.

 

이번에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

냉면국물로 하면 좋을 시원하고 맛있는

무우 동치미를 담았었다.마침 한 여름 8월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손님이 찾아오는 경우,실례라고 말할수 있는

상황인데,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들었었다.

우리집은 손님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고 ,

이층에 안쓰는 방이 3개나 있었으니까.

 

내친구 부부만 온것이 아니고,내친구 부부와 친하다는

신문사에서 일하시는 기자부부도 같이 왔었다.

그런데 내 친구가 얼마나 넉살이 좋은지 모른다.

막무가내로 행동을 하는데,전혀 그렇게

이상한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이처럼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찾고 있다.

 

남편을 보자마자 "선배님 처음 뵙겠습니다." 하면서

너스레를 떠니까 남자인 내남편이 더 멋적어 하고

어색해 해도 내친구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같은 대학을 나왔다고 금새 ''라고 말하는 것은

이 친구에게는 늘상 할수 있는 일이었다.

캐나다에서 대학 크리스마스파티가 있으면,내 친구처럼

사회를 잘보는 사람이 없으므로 늘 자기가 한다고 했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도 눈가에 고민을 안고 산다.

 

그렇게 캐나다에서 막 일행이 우리집에 도착한 직후,

며칠전 찾아 오셨던 ,박씨 아주머니께서 같이 오셨다. 

파킹을 하시려고 하실때 내가 다가가서 지금 친구가

캐나다에서 왔다면서 "다음에 오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박씨 아주머니는 쓸쓸한 얼굴로 돌아 가셨다.

그리고 그후 다시는 박씨 아주머니를 볼수가 없었다.

지금쯤 다른 분께서 박씨 아주머니 얘기를

들어 주시고 계시는 것일까?궁금하다.

 

 

 

                  아이들은 우는 것으로 자기의사를 나타낸다.

 

 

박씨 아주머니께서는 치료가 필요하신분 같다.

외동딸이 결혼하고 손주들도 있는데,어떻게 70대 남편을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을 하시는지 이해가 안된다. 

박씨아저씨는 아주 젊잖으시고, 인정도 많으신분이시다.

 

남의 속사정은 잘모르지만 어느 이민 초기의 젊은 한국인이

너무 고생을 해서 도와 주신것이 화근이 된것 같다.

부인도 있고 ,자녀도 있는 그분을, 박씨아저씨께서

만불정도 도와 주셨더니 이런 일들이 생겨 난것 같다.

만달라주시기 전에  부인과 의논을 하셨어야 하는 일인데...

 

 

남의집 일인데, 도울 방법도 없고 들어도, 듣기 좋은 얘기가

아니라서 난감했었다.지금쯤 박씨아주머니 의심병이

잘치료 되어서 옛날처럼 그 부부가 웃으면서 잘사셨으면 좋겠다.

사회생활을 하시고 계시지만 치료가 필요하신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이 전화로 얘기 들어달라고 하는것은

내가 충분히 들어 줄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일까? 

나도 들으면서 많이 힘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