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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엄마

푸른하늘 파란하늘 2015. 9. 16. 08:30




                                                             큰 화분에서도 잘 자라는 쪽뚜리 꽃


                            9월15일. 화요일.2015년



내가 윤이 엄마를 처음 본 것은,같은 뉴져지, 아틀랜틱시티로부터 이사온 뒤였다.

그러니까 큰 아이가 3살반 되던 1985년 봄무렵이었다.

남편이 고교동창들 몇명이 필라델피아인근에 사는것 때문에 가까운 이곳으로

이사를 했던 이유는 한국을 떠나 미국서 살면서 적적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친구들도 살고 있었는데 이삿짐 차가 도착한후 도와 주러 왔던분이 윤이 아빠였다.

이삿짐을 날라 주고는, 그 주일에 우리 가족을 자기집에 초대해 주었다.


윤이네는 대가족이 살고 있었다.시 조부모님,부모님,윤,영이와

남편친구인 윤이아빠와 엄마 그러니까 4세대가 한집에서 같이 살고 있었다.

그 많은 가족을 위해  LA갈비가 계속 그릴로 구어지고 있었고,그 사이에 

맛깔스러운 음식을 시원 시원하게 양푼으로 무쳐내고 ,또 다른 반찬도 재빠르게

만들어 큰 접시에 담아 내기까지 예쁜 윤이 엄마는 쉬지얺고 음식들을 만들어서는 

대가족과 함께 우리가족 식사를 차려놓았다.


                                                 홈 디포에서 파는 꽃

그전부터 많은 음식을 한꺼번에 해본터라 그렇게 힘들어 하는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윤이엄마는 윤이아빠와 7살이 차이가 나니까,젊어서인지 내눈에 참 예쁘게 보였다.

그렇게 식사초대를 받아서 간 날 윤이엄마를 처음 보게 되었다.

나보다 5살 아래인데도 윤이 엄마가 참 의젓한 것이 대가집 맏며느리여서 그랬던것 같고,

성품이 포용력도 있고,무던해서인것 같다.이렇게서로 알고 지낸지 어언 30년이나 되었다.

지금 윤이 엄마는 암 투병중이다. 그래서지금 내 마음은 참 슬프다.


                                              홈 디포에서 파는 꽃

지난주일 9월13일 저녁에 필라델피아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또다른 남편친구 부부와

윤이 엄마와아빠 그리고우리부부 6명이 만났다.조금 늦게 도착해서 분위기 좋은 곳에서 

음식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었는데, 수술을 마치고 윤이 엄마가 한국에 쉬러 

나간 후에야 알려 주어서 수술한 줄도 몰랐었다.들어보니 작은수술이 아니었다.

일년전 쯤 처음 초기에 수술울 받아서 괜찮다고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이럴때는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그저 듣기만 했다.


                                         홈 디포에서 파는 꽃

양쪽유방을 다 없앴다고 한다.수술후에 기다란 스폰지솜을 그 자리에 넣고 

옆으로 상처가 나을 때까지 분비물이 흘러 내리는 동안 극심한 통증이 왔었다고....

나중에 그 긴 스폰지 같은것을 빼내고,실리콘을 넣었다는...담담하게 말하는데

물어 볼수는 없었지만 치유가 되는일은 하나님 주관이신것 같았다.어떻게 

그 많은 대식구 며느리로 결혼초기부터 고생했는데,이제는 잘 살아야 할텐데 마음이 아프다.

즐거운척 웃으면서 식사를 하며 서로 아이들 자라는 것도 얘기하다가 레스토랑을 나왔다.


윤이엄마를 만나러 가는길.필라델피아에서

돌아 오기전 윤이 딸-그러니까 윤이 엄마의 손녀옷 몇벌을 Gap-kid에서 사서 

넣어둔 박스를, 집에서 쓴 편지- 회복을 바란다는 카드와 함께 건네주고 헤어졌다.

남편이 잘못 가르쳐 주는 네비게이션 때문에 늦게 가고있었는데 중간에 잘가고 있느냐고 

윤이 아빠의 전화가 남편에게 왔다. 남편이이어서윤이 엄마와 통화하라고 해서 

받아 몇마디 할때 윤이 엄마가 울었던 것처럼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그래서 통화를 간단히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나는 계속 그날 이후 슬프다.


                                    집뒷마당에서 주은 도토리와 키우던 작은 토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