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9월1일.2015년.
벌써 오래전의 얘기다.
81년 10월에 태어난 큰딸을 그 해에 학교로 보내기위해
사립유치원에 보냈다가 일반 초등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9월30일 까지 나이를 가르기때문에 그 다음해에 보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내가 할일이 없어서 큰 아이를 데리고
벽에 글씨를 써붙혀 놓고
매일 자주 아기를 안고 벽을 돌고 또 돌면서
가르쳤는데 돌 전에 알파벧을 다알고 숫자도 알게 되었다.
말도 못하는 아기가 글씨를 집어 오거나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두살때는 글씨를 쓰게 되었다.
유태인이 운영하는 두살반 너서리에 보내게 되었는데 이름을 쓸수 있는 아이는
한명 더 있었다.그러니까 머리좋은 유태인 학교에서도 뛰어난 큰딸이었다.
그 나이에 전화도 할수 있었다.
이렇게 아이는 일찍 부터 부모를 기쁘게 했다.
나도 막내만 낳지 않았으면 상당히
극성엄아가 될뻔 했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새동네로 이사오게 되었다.
큰아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 사는집에서 살고 있으니까
우리 아이들이 이집에서 자라서 다들 30이 넘는 성인으로 자란 셈이다.
뇌성마비 막내딸을 키우면서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낳았다고 내 자식이니까 내 의지대로 욕심부려서 더 잘키우려던 생각대신에
성경말씀을 많이 들려주고 스스로 잘 공부하는 아이들로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부부가 같이 그렇게 노력하면서 매일 가정예배보고
스스로 공부하도록 옆에서 도와주었다.
큰 아이가 12학년때였다.이곳에서 티비 뉴스에도 나고,신문에도 났던 사건이 있었다.
우리집에 왔던 아이들이다.입양아였던 아이가 또 다른 한국여자 아이에게 임신을
시켰는데,여자아이가 아버지가 무서워서 자기방에서 아기를 낳아서
우는소리가 밖에 새어 나가지 못하게 아기입을 막았는데 아기가 죽고 말았다.
그 여자아이는 우리동네에 사는 아이였다.
우리집에 왔던 여자아이들을 한꺼번에 두명을 사귀었던 셈이다.
뭐라고 딱 꼬집을 수는 없는데, 어른들 눈에 이 아이는 아니다는
판단이 서니까 더 친구로 가까이 하지 말라고 말할수 있었다.
그런데 그 아기를 낳았던 부모가 오제이 심프슨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를 고용해서
딸을 무죄로 되게 할수 있었다.변호사에게 많은 돈을 지불했다고 들었다.
그집은 딸때문에 이동네에서 살지못하고 다른곳으로 이사를 갔다.
이사간 그 여자아이가 몇년이 지나서 대학 졸업후 큰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부모가 은행에 500달라를 넣지않으면 부도가 나니까
곧 갚겠으니 꾸어 달라고 해서 큰아이가 자기돈을 꾸어준 일이 있었다.
큰 딸은 그 당시 킴멜센타(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관장)에 다니고 있었다.
그곳서 열심히 근무해서 저금한 돈을 빌려간 것이었다.
그부모가 같은교회에 다니고 있어서 "네돈 갚으라고 할까?"하고
물어 보았더니,"엄마.... 돈은 아무것도 아니예요.
돈보다 친구를 잃은것이 더 속상해요.
결코 말씀해서는 안돼요."라고 해서 큰딸 말대로 하지 않았다.
큰딸아이가 나보다 나은것은
나같으면 부모에게 말해서라도 돈은 받아 냈을텐데
저런 속깊은 생각을 하는 것이 대견하다.
그 아이는 그 후 내딸 앞에 숨어버린 친구가 되었다.
봉재 강아지를 안고 있는 손녀와 손자... 큰딸 과 큰딸 친구들의아이들..
요 얼마전 엘에이를 방문했을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