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부모의 대열
단풍나무에도 봄이면 꽃이 핀다.꽃이 지면 날아가기 좋은 씨가 맺힌다.
스마트폰으로는 꽃과 씨가 잘 안찍혔다.
4월29일.2017년.토요일.
밤새 천둥번개 치면서 쏟아지는 소나기소리를 들었다.
남편은 왠일인지 잠들지 못하고 컴으로 TV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잠들다 깨다가 하면서 몇시냐고 물어보니 새벽 2시30분이라고 했다.
비내리는 소리에 "스프링쿨러를 잠가야 하는데..." 남편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잠그고 잤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부엌에 내려가서 아침커피를 마시고 올라왔다.
지금은 아침 7시인데 남편은 늦게 잠들었서 언제 깰지 모른다.
이 꽃은 한번 심은 후 너무 집에 많이 퍼졌다.조개꽃과 비슷한데 이꽃은 털이 없다.
처음 남편을 보았을 때가 1979년 네째 이모부집 거실에서였다.
참 내게는 별로였던 남편이 이모부 친구라는 구실로
한번 보고나서 싫다고 했으나 같은 회사동료이니
서로 어색하지 않게 몇번은 만나야 된다고 해서
이모부 체면이 나때문에 잘못 될까봐 몇번을 만났는데
같이 보셨던 어머니는 서울깍쟁이같은 인상이
너무 맘에 드신다고 더 만나 보라고 하셨다.
미장원여자에게 가져다 주려고 두화분에 심어서 자라기를 기다리는 핑크색 사랑초.
아마도 내가 여물지 못해서 세상살기가 힘들것 같아서
걱정이셨던 어머니께서는 미래 사위될 청년이
맘에 드시는 모양이셨다.
나중에 남편이 하는 말이 내가 서울서 친구들을 만나느라고
늦게 들어왔던 첫날 우리어머니를 처음 보게 되었는데,
어머니를 보고는 저런 어머니시면 딸은 보나 마나라고
멋대로 이미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당사자는 없는데, 사위될 청년과
신부될 어머니는 서로 마음에 들어 했던것 같았다.
지난 부활주일에 갔던 교회도서실에서 친정어머니.
사실 나는 어머니와는 너무 다르다.
어머니와는 성격도 다르고 아주 미인이신 어머니와는 생긴것도 다르다.
나는 친탁을 많이 했지만 어머니를 닮지 않아서 유감스러웠다.
내 얼굴이 못생긴 것은 아니나 , 외갓집 식구처럼 코가 오똑하고
예쁜 서양사람같은 얼굴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이상한것은 내가 어릴때 이모들이 납작코라고 많이 놀렸었다.
어린 내가 보아도 그런것 같아서 외가에 가면 많이 기가 죽었었다.
자라면서 이모들 같지는 않지만 내코는 저절로 높아졌다.
에그헌터에 같이 갔던 남편과 손주들.
어머니께서 잘보셨던 남편과 같이 살아온 날이 올해 12월이면 만38년이다.
매사에 근검절약인 남편과,새물건 사는 것을 좋아 하는 나와
서로 맞추느라 참 어려운 시절도 많았다.
정말 이 남자와는 못살겠다고 친정으로 갔는데,
아무도 내 얘기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친정에 삶아서 두봉투 가져 갔던 신선초.나물이 쌉싸름하게 맛있다.
저 뒤로 쑥이 보인다.
바로 내뒤를 따라 친정에 온 남편에게
친정아버지께서는 " 성질 못된 내딸 데리고 사는라 수고많네."
그날부터 남편은 나보고 오죽하면 친정에서도 내놓고
성질 못되었다고 하느냐고 무슨 일이 생기거나
내가 우기려고 하면 그 소리를 해서 참 결혼생활이 힘들었다.
친정에서 사위가 미국에는 가족도 없는데
나까지 사위에게 그러면 못쓴다고 하시니,
친정에는 하소연 해도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작약꽃 봉오리가 작게 보이고 있다.
그래서 그럭 저럭 지내면서 맞춰가다 보니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부모가 되는 길은
모든 일에 가정의 평화를 우선으로 살다 보니
그렇게 아이들이 생각 하는것 같다.
아이들 앞에서 안싸우는 부모가 되려고 애썼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싸울 일은 없어졌다.
정원에 심은 핑크색 사랑초꽃이 피었다.
둘째는 훼밀리 테라피로써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부부를 화목한 가정얘기를 할때 예로써 말을 하는것 같았다.
훼이스북에도 그렇게 썼다. 장애인을 가진 부부가
이혼을 많이 한다고 했지만 우리 부부를 장애인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써
가정을 잘 이끄신 부모라고 소개를 했다.
둘째딸에게나 큰딸에게나 우리 부부가 살아온 지난 날들이
존경받을 부모의 대열에 넣고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오늘 아침에도 연두색이 더 짙어지는 참나무.